인간이 컴퓨터에 바둑에서 이기기 힘들게 된 현시점에 인간이 바둑을 두는 의의가 있는지, 프로 바둑의 존재 이유가 있는지를 살펴본다.
Contents
인공지능은 특별한 능력자
인간과 인공지능의 바둑 대결은 무의미하다.
2016년에 벌어진 이세돌과 알파고의 대결 이후에 알파고는 바둑 분야에서 은퇴하였지만, 그 후예인 다른 여러 인공지능(Artificial intelligence, AI) 바둑 프로그램은 괄목할 만한 성장을 하여서 이제는 인간 최고수라고 해도 호선으로 인공지능을 상대하기 어려워졌다. 우선, 인공지능 바둑이 어찌 이리 강한 실력을 갖출 수 있었는지 살펴보고, 인간 바둑을 논의한다.
이제 인간과 컴퓨터의 바둑 대결이 왜 무의미하게 되었는지는 특정 분야에서 인공지능 컴퓨터가 갖춘 엄청난 능력을 보면 알 수 있다. 인공지능 컴퓨터의 그런 능력은 인간이 보기에 반칙이라고 느껴질 만하다.
연산력
인간과 비교하면 컴퓨터의 연산력은 대단히 빠르다.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제대로 갖춘 컴퓨터의 연산 속도는 상상을 초월한다. 물론, 그 연산의 정확성은 의심할 필요도 없다. 이런 속도와 정확성이 있기에 알파고가 이세돌과 대결하기 전에 3,000만 번의 자가 대국을 통해 스스로 훈련하였다는 말이 전혀 거짓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알파고는 데이터를 학습해 모방하는 기술이 아닌 실제 자가학습을 통해 시행착오를 거친 후 발전하는 소프트웨어라는 설명도 곁들였다. 그는 “3000만개의 포지션을 학습한 알파고는 3000만 번에 달하는 셀프 대국을 치르면서 이기고 지는 과정을 모두 보게 했다”며 “승수와 패수를 구분하는 강화학습도 병행했다”고 말했다.
-딥마인드 데이비드 실버 박사-
https://news.mt.co.kr/mtview.php?no=2016030812325896447
기억력
컴퓨터의 기억은 단순히 저장 매체에 기록하는 과정으로 달성되는 것이므로 원하기만 하면 언제라도 상기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따라서 인공지능 바둑 프로그램은 수천만 번의 자가 대국 결과를 온전히 기억하면서 어떤 상황에서 어떤 수가 높은 승률을 보장해 주는지를 알 수 있다.
딥 러닝
알파고가 등장하기 전에도 웬만한 컴퓨터라면 막강한 연산력과 기억력을 갖추고 있었지만, 프로기사와의 바둑 대결에서 잘 이기지를 못하였다. 적당한 알고리즘을 갖추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 부족한 부분을 구글 딥마인드가 메꾸어 주었다. 딥마인드는 컴퓨터에 ‘딥 러닝’이라는 알고리즘을 탑재하여 컴퓨터가 자가 대국을 통하여 스스로 바둑 실력을 향상할 수 있는 길을 열었다. 이제는 바둑 프로그램의 사고방식이 인간과 비슷한 지경에 이르게 되어 드디어 바둑 프로그램에 ‘인공지능’이라는 칭호가 붙게 되었다.
알파고가 은퇴한 후에도 딥마인드가 발표한 논문을 통하여 알파고의 방식이 다른 여러 바둑프로그램에 이식되어 그것들이 알파고의 빈자리를 채우면서 이제는 프로기사들을 비롯한 많은 바둑인들이 인공지능의 추천수를 일상적으로 참고하고 있다.
체력
사람은 바둑을 오래 두면 체력이 점차 떨어지고 피로가 쌓이면서 집중력을 잃게 되므로 안 하던 실수도 하게 된다. 그러나 컴퓨터는 그런 게 없다. 인공지능 바둑프로그램은 컴퓨터 가동에 필요한 전력 공급, 적절한 냉각 등의 관리만 해주면 아무리 오랜 시간 동안 바둑을 둔다고 해도 전혀 지치거나 피로해지지 않는다. 즉, 인공지능 바둑 프로그램에게는 알고리즘 외에 실수를 할 여지가 거의 없다.
반전무인
예전에 바둑의 높은 경지를 표현할 때 반전무인(盤前無人)이라는 사자성어를 언급하고 했다. 바둑판 앞에 사람이 없다는 뜻이다. 즉, 앞에 앉은 상대방을 의식하지 않고 자기 바둑을 두는 경지를 말한다. 이창호 전성기 시절의 별명인 ‘돌부처’도 비슷한 맥락의 말이다. 반전무인을 중시하는 이유는 그만큼 인간은 상대방을 의식하지 않는 것이 어렵기 때문이다. 가령, 자기보다 강한 상대와 대국할 때 상대를 너무 의식하면 사고가 경직되어 자기 실력을 제대로 발휘하기 어려우므로 이길 가능성이 작아진다. 따라서 이기기 위해서 반전무인의 자세는 필요하다.
그러나 인공지능 바둑 프로그램은 상대를 의식하여 바둑을 망칠 일이 없다. 인공지능 바둑은 태생적으로 반전무인의 경지에 이미 올라가 있다. 인공지능은 어떠한 상황에서도 심리적으로 흔들리지 않는다. 인공지능을 상대하는 인간의 관점에서는 불공평하기 짝이 없다.
그러나 인간을 대체하지는 못한다.
위의 논의만 고려한다면 인간이 쓸모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혹시 정말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당신은 유물론적인 사고에 젖어있는 사람이다. 과학적으로 증명할 수는 없겠지만 인간은 단순한 물질 덩어리가 아니라고 나는 생각한다. 과거 성인들 말씀의 취지를 곱씹어 보면 그렇다는 것이다. 나는 아인슈타인, 호킹의 말보다 석가모니, 공자의 말씀을 더 신뢰한다.
인간과 컴퓨터는 비교 대상이 아니다.
인간 바둑의 의의
프로 바둑의 필요성
인공지능 바둑 등장 초창기에 프로 바둑의 존재 이유에 의문을 제기한 사람도 있었다. 이제 프로기사가 인공지능보다 더 나은 기보를 만들어 내지 못하는데 프로 바둑계가 존재할 이유가 있냐는 것이다. 그 말도 아주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인간과 컴퓨터의 바둑 대결이 무의미하게 된 현시점에서 인간 바둑이 인공지능 바둑을 꺾는 데 더 이상 연연할 필요는 없다. 시합 바둑에서는 ‘인간 대 인간, 인공지능 대 인공지능’과 같이 체급이 같을 때 의미가 있다. 따라서 인간 고수가 인공지능보다 바둑을 못 둔다고 프로 바둑계가 문 닫을 필요는 없다.
인공지능 바둑의 수준은 상당히 높아서 어떤 수는 프로 고수들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 상당한 시간을 투자해야 한다고 한다. 그럼, 일반인들은 더 말할 나위도 없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일반인 애기가들에게 프로기사는 인공지능과 애기가를 연결하는 가교 구실을 한다고 볼 수 있다. 애기가들에게는 인공지능의 수준 높은 추천수를 인간의 관점에서 쉽게 풀어서 설명해 줄 프로기사가 필요하다.
알파고의 등장 이후 이세돌은 어떤 이유에서인지 프로기사직을 은퇴하고 말았지만, 대부분 프로기사는 인공지능 때문에 은퇴하기는커녕 인공지능의 존재를 현실로 받아들이고 인공지능을 선생님으로 삼아 그동안의 바둑 이론을 모조리 뜯어고치면서 인간 바둑의 새로운 장을 열어가고 있다.
인간 바둑에는 인간미가 있다.
사람의 바둑에는 컴퓨터의 바둑에 없는 심리전이 있다. 또한 기사들은 인간적인 다양한 습관이 있다.
기사들의 흔한 습관으로는 상대방 쳐다보기(째려보기)가 있다.
최명훈 해설위원: 우이밍 선수는 형세나, 뭐, 이런 게 상관이 없네요. 그냥 무조건 상대를 쳐다보네요. -2023/10/13 : 서울 부광약품 vs 여수세계섬박람회ㅣ2023 NH농협은행 한국 여자 바둑 리그 13R 2G-
우이밍이 상대를 쳐다보는 게 귀엽다.
바둑계에는 기사들이 대국 중에 상대를 쳐다보는 것을 좋지 않게 생각하는 분위기가 있는데, 그럼에도 많은 기사가 실제로 상대의 얼굴을 쳐다본다. 보통은 자기 수를 둔 다음에 상대의 얼굴을 본다.
‘내 수를 보고 상대는 어떤 표정일까?’
만약에 상대가 당황한 기색을 보이면 내 수를 예상하지 못했다는 뜻이므로 나에게는 호재이다. 대국 형세에 따라 표정이나 얼굴색이 잘 변하는 기사가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상대방은 알토란 같은 정보를 얻는다. 하지만 이창호 같은 기사는 그런 정보 따위에는 관심이 없는 모양이다.
기사들은 바둑판 바깥에서 다양한 심리전을 펴기도 한다. 한숨 쉬기, 낙담하기, 엄살 등은 일부러 자기가 형세를 불리하게 보고 있다는 거짓 정보를 상대에게 흘리는 기술이다. 상대의 방심을 불러올 수 있다.
그 외에 꼭 심리전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는 기사들은 다양한 습관이 있다. 자학하기, 중얼거리기, 다리 떨기, 머리 꼬기 등이 있다.
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201901260142084296
https://www.hani.co.kr/arti/sports/baduk/436561.html
여가 선용
애기가들에게 바둑은 건전한 여가 선용의 수단이 될 수 있다. 꼭 바둑을 몸소 두어야 제맛은 아니다. 나처럼 구경하는 걸 더 좋아하는 사람도 많이 있다. 아무리 친목 바둑이라고 해도 바둑을 실제로 두면 조금은 긴장할 수 있는 데 비해서, 관전하면 속 편하게 바둑을 즐길 수 있다.
정치인 김종필도 바둑광이었다고 한다. 비행기 타고 가는 7시간 반 동안 자기 비서와 자석 바둑판으로 쉴 새 없이 20여 판이나 두었다고 한다. 참 대단하다.
https://www.donga.com/news//article/all/20010321/7665694/1
그렇게 초속기로 바둑을 두면 이기고 지고를 반복할 테니 승부에 집착하기보다는 바둑 자체를 즐길 수 있겠다. 돌아가신 분한테 한 수 배웠다.
취미
바둑은 취미로서도 고상하다. 바둑을 둘 줄 아는 사람은 뭔가 있어 보인다. 바둑의 깊고 오묘한 수를 이해하게 되면 기분이 좋다. 이제 인공지능을 활용할 수 있으므로 자기가 원하면 얼마든지 바둑의 원리를 깨닫고 실력을 향상할 수 있다. 사활 문제를 많이 풀어서 수읽기 능력을 배양하면 성취감을 느낄 수 있다. 이처럼 사람의 바둑에는 성취감, 재미 등 컴퓨터에 없는 요소가 있다.
지능 계발
아이들은 대개 주의가 산만하고 집중하지 못하는 예가 많다. 그런 아이에게 공부시키고 싶어도 쉽지 않다. 바둑은 재미있는 놀이이므로 아이에게 더 쉽게 가르칠 수 있다. 어린이가 바둑을 배운다면 배우지 않았을 때보다 머리가 빨리 깨어난다. 집중력도 기를 수 있다. 실제로 요임금 또는 순임금이 자신의 둔한 자식을 가르치기 위해서 바둑을 발명했다는 설이 전해지고 있다.
http://m.baduk.or.kr/story/G02.asp
바둑은 어른들의 두뇌도 훈련해 준다. 나이를 먹을수록 지적인 능력이 퇴화한다. 전에 어느 글에서 읽으니, 우리나라 사람 중에 글을 읽어도 내용 파악을 못 하는 사람이 많다고 한다. 사고력이 떨어져서 그렇다. 이럴 때는 뭔가 두뇌를 단련해 줄 수단이 필요하다. 특정한 주제를 정해서 꾸준히 생각하는 버릇을 기르면 머리가 녹슬지 않을 것이다. 바둑도 그런 주제가 될 수 있다.
친목 도모
바둑을 수담(手談)이라고도 칭한다. 손으로 말한다, 즉 대화를 나눈다는 말이다. 입이 아니라도 바둑판 위에서 ‘이 수는 어떻게 받으시겠습니까?’, ‘이렇게 받지요.’, 대화가 된다. 처음 만나 어색한 두 사람이 바둑을 두면 금방 친해질 수 있다. 또는 바둑을 대화 소재로 삼을 수도 있다.
치매 예방
안 그렇다는 말도 없지는 않지만, 바둑을 두면 치매가 예방된다는 말이 많다. 나는 지난 20여 년간 바둑 뉴스를 읽고 있는데 프로기사가 치매에 걸렸다는 말은 한 번도 들어보지 못했다. 물론, 바둑도 즐기고 독서도 하며 운동도 하면 더욱더 치매가 예방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