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은 땅따먹기 놀이 (1), 울타리 치면 내 영토


바둑을 모르는 이들을 위하여 바둑의 기본 원리를 쉽게 설명한다. 골치 아프지 않게 바둑을 즐길 수 있다. 바둑을 알면 교양도 높아진다. 바둑은 장점이 많다.

알파고와 이세돌

여러 해 전 알파고가 등장하여 인간 고수인 이세돌 9단과 바둑 대결을 펼쳤다. 내가 알기로 그 전에 이미 체스에서는 컴퓨터가 인간을 앞지른 상태였다. 그러나 바둑 경우의 수가 너무 커서 섣불리 바둑에서는 컴퓨터가 인간을 이길 수 있다고 장담을 못 하는 분위기라고 나는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세돌 9단이 첫판부터 고전하다가 패배하고 말았다. 비록 이세돌 9단이 전성기를 지난 시점이라고는 해도 컴퓨터 나부랭이한테 지리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한 판씩 둘수록 이제는 그가 지는 것이 당연시되었다. 그러다가 4국에서 이세돌 9단이 승리하여 큰 화제가 되었다. 그 정도로 알파고의 실력은 막강했다.

골치 아프지 않게 바둑을 즐길 수 있다.

그때 바둑을 둘 줄 모르던 분들은 소외감을 느꼈을 법하다. 바둑의 기본 규칙 정도만 알고 있었어도 소외감을 덜 느꼈을 텐데. 바둑을 잘 두기는 어려워도 바둑을 즐길 방법은 많다. 요즘은 중요한 대국이 있으면 유튜브에서 생중계한다. 바둑 내용은 늘 어렵지만, 해설자가 친절하고 세세하게 바둑의 내용을 설명해 주니까 듣고 있으면 이해가 잘 되고 아주 재미있다. ‘그런 깊은 뜻이 있었군!’, ‘그게 실착이었군!’ 이러면서 보면 된다. 물론, 의미 있는 장면에서는 그 수순을 음미해 보면 훨씬 더 재미있다. 요즘의 해설자들은 누구나 알파고의 후예인 인공지능 바둑 프로그램을 활용하므로 해설의 수준은 옛날보다 훨씬 높아졌다고 볼 수 있다.

나는 바둑을 둘 줄은 알아도 요즘 대국을 하지는 않는다. 승부에 너무 집착하면 피곤해진다. 바둑을 직접 두지 않아도 바둑을 충분히 즐길 수 있다. 야구, 축구를 직접 하지 않아도 즐길 수 있는 것과 똑같다. 물론, 바둑을 깊이 연구하고 싶은 사람은 인공지능 바둑 프로그램을 이용하면 된다. 혹시 할 일이 너무 없어서 고민인 사람이 있다면, 바둑 공부하면 된다.

바둑을 알면 기분 좋은 일이 잘 생긴다.

우리나라에는 프로기사 제도가 있고 강한 기사들도 많다. 국내 대회뿐만 아니라 세계대회도 많이 열린다. 우리나라 기사들이 세계대회 우승을 잘한다. 이번에 끝난 제9회 응씨배 세계바둑대회 결승에서도 우리나라의 일인자인 신진서 9단이 승리하여 대회를 우승하였다. 그 이전의 다른 대회 실패를 극복해 낸 쾌거였다. 응씨배는 사실상 제일 오래된 세계대회이고 권위 있는 대회이다. 4년마다 열리므로 실력이 있어도 운이 따라주지 않으면 우승하기 어렵다. 지금까지 9회를 진행하는 동안 우리나라 기사가 매번 결승에 올라 그중 6번을 우승하였다. 승률이 2/3에 달한다. 우리나라에는 조훈현-이창호-이세돌-박정환-신진서 로 이어지는 일인자 계보가 있는데 이처럼 늘 강한 기사들이 있어서 바둑 애호가들을 행복하게 해 준다. 바둑 애호가들의 바둑 실력은 제각각이어도 우리가 이겼다고 하면 기분 좋은 건 매한가지이다.

우리 생활에 깊숙이 들어와 있는 바둑 문화

우리의 일상생활 속에서 바둑 용어를 은근히 자주 쓰고 있다. 바둑을 모르는 사람들도 그 말이 어떤 맥락에서 쓰이는지 아는듯하다. 예를 들면, 미생, 호구, 포석, 승부수, 국면, 대마불사, 꽃놀이패, 복기, 착수, 꼼수, 묘수, 무리수 등이 있다.
https://www.joongang.co.kr/article/17770573
https://blog.naver.com/ljwphsjh/222428418389

한판의 바둑 속에서 우리는 다양한 경험을 한다. 대마가 미생이어서 쫓겨 다니며 고생하기도 하고, 어려운 국면을 타개하기 위해서 승부수를 두기도 한다. 잘 두다가 실착 한 수로 형세가 뒤집히기도 한다. 때로는 꽃놀이패를 만들어 콧노래를 부른다. 상대방의 꼼수에 속아 역전패당하기도 한다. 우리의 인생에서도 이런 비슷한 일이 일어날 수 있다. 그러다 보니 바둑 용어가 일상생활에서 자연스럽게 쓰이나 보다.

바둑 실력이 뛰어나지 않아도 바둑 용어가 어떤 의미인지 정확하게 알 수 있다. 국어 실력은 바둑 실력과는 별로 관계없다고 생각하지만, 바둑을 전혀 모르는 사람보다는 바둑의 규칙이라도 아는 사람이 바둑 용어를 훨씬 더 잘 이해할 수 있다. 이처럼 바둑을 일상생활의 교양으로 여겨도 된다. 물론, 바둑은 재미도 있다. 복잡한 수는 해설자가 다 설명해 주니까 그거 듣고 이해할 정도면 충분하다.

바둑은 땅따먹기 놀이

바둑 규칙은 간단하지만, 처음에는 잘 이해가 안 될 수도 있다. 규칙을 공부하고 바둑을 몇 판 두다 보면 규칙의 의미를 점차 깨닫게 된다.

현재 애용되는 바둑판은 19×19 바둑판이다. 꼭 19줄일 필요는 없지만 ‘홀수 x 홀수’의 규정은 필요하다. 아무튼 이 바둑판에서 선과 선의 교차점을 보자. 19×19=361 이다. 이 선과 선의 교차점 361 곳에 바둑돌을 놓을 수 있다. 361 의 값은 이 바둑판 전체의 공간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일종의 넓이(면적) 개념이다.

여기, 승부를 겨루고 싶은 두 사람이 바둑판에 마주 앉아 있다. 한 사람은 검은 돌(=흑), 다른 한 사람은 흰 돌(=백)을 들고 있다. 두 사람은 자기가 들고 있는 흑돌 또는 백돌 1개씩을 번갈아 바둑판 위에 올려놓는다. 물론, 선과 선의 교차점에 놓는다. 이들은 빈 곳이었던 바둑판에 자신의 돌로 울타리를 쳐서 자신의 영토로 삼는다. 바둑이 끝나고 나면 서로의 영토 크기를 비교하여 승패를 가린다. 영토는 여러 곳으로 나뉠 수도 있다.

영토의 크기 = 울타리 안의 교차점 개수
흑백 영토의 크기 비교
흑백 각각의 울타리 안에 있는 선과 선의 교차점 개수가 흑백의 전체 집이다. 영토가 여기저기 흩어져 있으면 집의 크기를 합산한다.

자, 여기 9×9 바둑판에 한판의 바둑을 두었다. 흑집은 22, 백집은 28이다. 바둑판 위의 수치로만 따져도 백이 6집을 이긴 셈이다.

앞에서 바둑 한판의 승패를 따져보았는데 몇 가지 중요한 전제가 적용되었다.

  • 바둑판의 테두리 쪽은 막혀 있는 것으로 한다.
  • 한 자리에 돌 하나씩만 놓을 수 있다 (바둑돌이 둥글어서 한 자리에 여러 개를 놓고 싶어도 못한다).
  • 바둑판 위에 놓인 돌은 다른 자리로 옮겨갈 수 없다 (장기와 다른 점).
  • 집이라는 말은 영토 전체를 의미하기도 하고, 영토를 세는 단위로도 쓰이므로 문맥에 따라 이해해야 한다.

돌로 울타리를 친다.

만약에 바둑판 테두리를 이용하지 않고 바둑판 중앙에만 영토를 만들고 싶으면 사방을 다 둘러싸면 된다.

중앙에 집을 짓는 방법
중앙에 집을 짓기 위해서는 사방을 다 둘러싸야 한다.

설명을 위해서 극단적인 기보를 만들었다. 흑이 중앙 집을 고집하다가 달랑 4집을 지었고, 백은 바깥을 둘러싸서 31집이나 지었다. 중앙은 돌을 많이 투자해야 집이 되므로 집 짓는 것만 생각하면 돌의 효율이 떨어진다. 그렇다고 중앙이 중요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전투를 대비하려면 중앙에 군사가 많은 쪽이 유리하다. 이 글의 주제는 아니지만, 이처럼 돌은 단지 울타리에 쓰이는 수동적인 존재가 아니라 전투 시에는 군사가 되어 적을 쳐부수기도 한다. 각각의 돌은 제자리에 있지만 돌의 무리, 즉 대마가 상대방의 대마와 어울려 싸운다. 전투에서 전과를 올리면 그게 자신의 영토에 합산된다.

무조건 울타리를 크게 치면 좋을까?

너무 넓은 흑의 영역이 모두 집이 될지가 궁금하다
저 넓은 흑의 영역이 모두 집이 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설명을 위해서 만든 또 하나의 극단적인 기보이다. 이 바둑을 보자. 겉보기에는 흑이 225집 백이 72집이다. 흑은 바둑을 다 뒀다고 하면서 착수 포기를 했다. 이 상황에서 백은 어떻게 해야 하나? 만약 백도 바둑 다 뒀다고 동의하면 바둑은 그대로 끝나고 흑의 승리로 결론 나겠지만….

흑백의 돌이 섞여서 분쟁이 생겼을 때의 바둑 규칙을 알아본다
백돌이 흑의 영역에 들어갔다. 이제 저곳이 누구의 집인지 판가름할 규칙이 필요하다.

백은 바둑을 지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흑이 자기 집이라고 주장하는 곳에 쳐들어갔다. 백은 저 넓은 곳에 자기 영토를 건설하고 싶어 한다.

이제 저기는 누구의 영토인가? 바둑의 설계자도 이 문제를 깊이 고민하였다.

바둑의 설계자는 천재였다.

천재였던 바둑의 설계자는 저 땅이 누구 땅인지 판사가 와서 판결하지 않아도 누구나 알 수 있도록 아주 간단하지만, 심오한 규칙을 만들어 냈다. 즉, 돌과 돌이 엉켰을 때 돌의 살고 죽는 규칙을 만들었는데 크게 다음의 세 가지 규칙에 기초를 두고 있다.

  • 단수 (& 빵때림)
  • 착수 금지 규칙
  • 착수 금지 예외 규칙

이 세 가지 규칙에 따라, 쳐들어간 저 백돌이 어찌어찌하여 살아있는 돌임이 증명되면 흑집은 확 줄어들게 되고, 백돌이 흑의 공격을 막아내지 못하고 죽어버리면 저기는 모두 흑집이 된다.

단수(單手)란, 죽기까지 단 한 수밖에 안 남았다는 뜻이다. 單은 홑 단이다. 단수는, ‘단수를 친다.’, ‘단수에 몰린다.’, ‘단수를 당한다.’ 등의 표현으로 사용된다. 단수는, 장기로 치면 장군을 당한 셈인데, 차이는, 장기에서는 왕만 장군을 당하지만, 바둑에서는 아무 돌이라도 단수를 당할 수 있다는 점이다. 단수를 당했으면, 두 가지 선택이 있다. 그 돌에 한 수를 덧붙여 단수를 면하든가, 그 돌을 포기하고 더 좋은 다른 자리에 두면 된다.

프로기사들이 바둑을 처음 배울 때를 회상하며, 단수를 배우던 때라고 표현한다. 즉, 바둑 기초를 배울 때 단수도 배운다. 단수는 상대방 돌을 잡아먹기 직전의 상태이므로 바둑을 처음 접하는 사람도 재미있어한다. 이 글을 여기까지 읽어준 여러분은 이제 바둑을 배울 자격을 갖추었다. 바둑 둘 줄 아는 사람 아무나 붙잡고 “단수를 가르쳐 주세요.”라고 하면 웃으며 잘 가르쳐 줄 것이다. 바둑 애호가들은 서로서로 가르치고 배우는 걸 좋아하고 당연히 해야 할 일로 여긴다.

구체적인 바둑 규칙은 다른 글에서 설명하겠다.
https://hhtt.kr/102540

바둑을 수단으로 이용할 수도 있다.

여성들은 자기가 관심 있는 남자가 혹시 바둑을 좋아한다면 바둑을 매개로 그에게 접근해 볼 수 있다. 바둑 둘 줄 아는 남자들은 바둑 둘 줄 아는 여자에게 호감을 느끼기 쉽다.

주의가 산만하고 집중하지 못하는 아이를 가르치는 용도로 바둑을 이용할 수 있다. 프로기사 원성진 9단이 어릴 때 그랬다는데 지금은 바둑으로 이름을 날리고 있다. 아이 때 바둑을 배우면 머리가 좋아진다고도 한다. 좀 둔한 아이의 머리를 바둑으로 일깨운 후에 학업에 집중하게 하는 방법도 좋을 것 같다.

자신의 지적인 면모를 주변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으면 바둑을 배워 볼 수 있다. 바둑이 머리를 많이 써야 하는 경기임은 다들 아니까 ‘저 사람 안 그래 보이는데 바둑도 둘 줄 아네.’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바둑 실력 차이가 크게 나는 사람하고도 접바둑으로 대국을 할 수 있으므로, 친목 도모에 바둑을 활용할 수도 있다.

바둑이 치매를 예방한다는 말은 이제 상식으로 되어 있다. 오전에 방송되는 TV 건강프로그램에 치매 얘기는 단골로 나온다. 우리나라에 노인 인구 비중이 높으니 당연하다. 바둑은 재미도 있고 치매도 예방하니 얼마나 좋은가?

내기 바둑은 안 된다.

내기 바둑은 도박, 술과 마찬가지로 인생을 망친다고 생각한다. 그런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조심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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