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 해 겪어본 시바견 두 마리 검둥이와 누렁이의 짖음, 둘 사이의 문제점, 식성, 지능, 공통점, 차이점에 대하여 기술한다. ‘두 번’의 의미를 알았던 누렁이를 회상한다. 여름에는 햇볕을 피할 곳이, 겨울에는 햇볕을 쬘 곳이 필요함을 강조한다. 바쁘거나 관찰력 없는 분들은 개를 키우지 말라고 조언한다. 개 키울 때 이런저런 데 돈이 많이 들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 개 주인 노릇을 잘하려면 공부하고 연구해야 함을 조언한다. 이웃집 개들과의 소통 경험, 야생 동물들과의 경험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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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만남
이곳에 이사 온 것은 2018년 12월이었다. 4년 5개월 전이다. 마당 한 편의 개집에 시바견 두 마리가 살고 있었다. 울타리가 있고 안에 집이 있는 구조이다. 집의 재료가 내가 사는 집의 재료와 같다. 한 마리는 수컷 검둥이이고 다른 한 마리는 암컷 누렁이였다. 시바견에 관한 정보를 검색해 보면 황구라는 말은 없고 대신 적구가 있다. 이 누렁이도 자세히 보면 불그레한 털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래도 나는 그냥 누렁이라고 부르는 편이다. 2층에 있는 내 방의 발코니 창 바로 앞에 개집이 있으므로 나는 이들의 소리를 늘 듣는다. 둘은 매일같이 아웅거리고 싸웠다. 소리는 주로 누렁이한테서 나왔다.
낯선 사람을 봐도 짖지 않는다
검둥이와 누렁이의 공통점은 낯선 사람을 봐도 잘 짖지 않는다는 것이다. 누군가에게 신호를 보내기 위해서 캉캉하는 소리를 낼 때는 있다. 예민한 누렁이가 소리를 더 내는 편이고 검둥이는 소리를 거의 안 낸다. 물론 아주 가끔 밤에 짖을 때도 있기는 하다. 검둥이는 힘껏 짖는 게 일 년에 두세 번 정도밖에 안 된다. 주변의 다른 개들은 낯선 사람을 보면 짖는 게 일이다. 저 멀리 지나가는데도 짖는다. 아마 시골에 사는 분들은 낯선 사람이 오면 개가 그런 식으로 알리라는 뜻으로 개를 키우기도 할 것이다. 집을 지키라는 의미도 되겠다. 누가 왔을 때 개가 시끄럽게 해주기를 바라는 사람은 시바견을 선택하면 안 되겠다. 반면에 조용한 것을 좋아하거나 이웃집에 소음 피해를 덜 주고 싶은 사람들에게는 시바견도 좋은 선택지가 될 거로 생각한다.
매일 다투고 싸웠던 검둥이와 누렁이
내 방 앞에 개집이 있다 보니 개소리가 늘 들렸다. 아웅다웅하는 소리는 늘 들렸고 사나흘에 한 번씩은 거의 격투기 수준으로 싸웠다. 나는 내가 하는 일에 집중하느라 개가 싸우든 말든 신경 쓰지 않으려고 했다. ‘내 개도 아닌데’ 하는 생각도 없지 않아 있었던 것 같다. 그렇게 한 일 년이 지나갔다.
식성이 다른 검둥이와 누렁이
어느 날, 문득 그들이 왜 싸우는지 궁금해졌다. 그래서 주의 깊게 그들을 관찰하기 시작했다. 관찰한 지 얼마 안 되어서 그들의 식성이 많이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한마디로 검둥이는 대식가이고 누렁이는 소식가이다. 밥그릇은 하나뿐이고 둘이 같이 이용한다. 사료의 대부분은 검둥이 뱃속으로 들어간다. 누렁이는 밥통이 작은지 한 번 먹을 때 먹는 양이 그리 많지 않다. 대신에 배가 빨리 꺼지니까 나중에 더 먹어야 하는데 이미 사료는 다 없어졌다. 누렁이는 날이 갈수록 말라갔다. 이렇게 매일 지내다 보니 똑똑한 누렁이는 깨닫게 된 것이다.
‘검둥이 저거 때문에 내가 늘 쫄쫄 굶는구나!’
그래서 누렁이는 검둥이에게 늘 짜증을 부린다. 둔한 검둥이는 자기가 왜 매일 누렁이한테 시달려야 하는지 모르는 것 같았다. 그래도 일단은 꾹 참는다. 며칠 참는다. 그러다가 결국 폭발한다. 그럼, 격투기 경기가 펼쳐진다. 이런 일이 사나흘 주기로 벌어졌다. 나는 상황을 파악했지만 어떻게 해줄지를 쉽게 결정하지 못했다. 개 주인은 여기에 살지 않고, 늘 바쁘므로 연락하기도 마땅찮았다. 그렇게 어영부영 또 시간이 한참 지났다.
둘을 떼어 놓기로 했다
그렇게 싸우다가도 발정기가 되면 그들은 꼭 교미했다. 일 년에 한 번씩 2년 동안 두 번 새끼를 쳤다.
‘새끼까지 낳았으니까 부부 사이가 더 돈독해졌겠구나.’
이런 생각은 지극히 인간적인 생각이다. 실제로는 부부 사이가 더 나아진 것은 없었다. 여전히 매일 싸웠다. 새끼를 낳아서 달라진 것은 누렁이의 체중이다. 서방한테 사료를 뺏길 뿐만 아니라 새끼한테도 양보해야 하니 더 말라간다. 사료를 더 많이 넣어주면 될 것 같지만 검둥이가 너무 돼지가 되어서 그것도 문제다.
둘이 늘 싸우는 것도 문제였지만 매년 새끼를 낳는 것도 큰 골칫거리였다. 개 우리가 좁아서 성견 두 마리가 지내기도 여간 불편하지 않은데 새끼를 키우는 것은 큰 문제였다. 누렁이는 새끼를 그리 잘 키우지 못했다. 자기가 늘 스트레스를 받고 사는데 새끼를 잘 키울 수 있겠나? 장마 때 갓 태어난 강아지가 집에서 굴러떨어져서 빗물에 기어다니고 있는데 누렁이가 할 줄 아는 것은 핥아주는 것뿐이다. 고양잇과 동물처럼 새끼를 물어 올리지 못하더라. 이 개집은 새끼를 키우기에 적당하지 않다.
결국 나는 결단을 내렸다. 이 둘을 분리하기로 했다. 일단 둘 중 한 마리를 우리 바깥으로 옮기고 밥그릇도 따로 쓰게 했다. 새끼들은 이미 다 떠난 뒤였다. 그렇게 한참을 지내며 계속 관찰하였다.
여전히 짜증 부리는 누렁이
누렁이는 예민하다. 사람도 예민한 사람은 이런저런 일에 불편을 잘 느끼므로 불만이 잘 생기고 짜증도 잘 부리게 된다. 누렁이도 그런 식이다. 이제 검둥이와 떨어지게 되어서 먹는 문제가 해결되었어도 과거의 일로 여전히 검둥이에게 짜증을 부리기 일쑤다. 자기 먹을 것에 눈치 없는 검둥이가 접근하는 시늉만 해도 누렁이는 짜증을 부린다. 울타리 때문에 검둥이가 더 이상 접근하지 못하는데도 말이다.
단순히 분리하는 것도 부족한 모양이다. 아예 서로 신경 안 써도 되게 해 줘야겠다. 그래서 누렁이를 35m 떨어진 곳으로 옮겼다. 누렁이가 고무 집을 사용하게 해주었다. 검둥이는 고무 집을 좋아하지 않았다. 그렇게 일 년 반인가 지냈나. 어느 날 누렁이가 보이지 않았다. 주인이 데려갔단다.
‘두 번’의 의미를 알았던 누렁이
누렁이의 기질, 성격은 어디 글에서 읽었을 법한 시바견의 특징과 비슷한 것 같다. 잔망스럽고 귀엽다. 눈치가 빨랐다.
어머니에게 전해 들은 이야기다. 개 통조림이 있어서 어머니가 개마다 두 숟가락씩 먹이곤 했다. 매일 그렇게 하니까 언제부터인가 누렁이는 두 번 받아먹고 나면 저리로 휙 가버린단다. 더 이상 안 줄 것을 아는 것이다. 그러고는 이쪽을 곁눈질로 살핀단다. 검둥이에게만 더 주는지 감시하는 것이다. 하하.
눈치도 없는 검둥이는 두 번 받아먹고 나서도 더 달라고 보채곤 한단다. 너는 ‘두 번’이 뭔지 모르는구나. 두 시바견의 지능도 이렇게 아주 달랐다.
마당에 나와서 뛰어다니는 것을 좋아했다
이들은 마당에 나와서 뛰어다니는 것을 좋아했다. 특히 검둥이는 아주 활동적이어서 뛰어다니는 것을 더 좋아했다. 내가 한 반년 정도는 개들을 마당에 풀어놓곤 했다. 이 집에 대문이 없어서 개들이 밖으로 나가면 좀 골치가 아프다. 이웃집에서 뭐라 하기도 한다. 그래서 개들이 밖으로 못 나가게 앞쪽을 지키곤 했다. 그러다가 어느 날 검둥이가 뒷다리를 절룩이는 모습이 보인다. 들으니 개 주인이 개를 풀어 놓았는데 검둥이가 밖에 나갔다가 교통사고를 당한 것이다. 이 개들은 차를 피할 줄을 모른다. 그런 경험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검둥이가 차에 치였나 보다. 다행히 몇 달 지나자 저절로 나아서 지금까지 멀쩡하게 잘 걷고 뛰고 한다.
생선 뼈를 잘 먹는다
밥 먹고 나면 뼈가 생길 때가 있는데 나는 그걸 개한테 갖다 주곤 한다. 검둥이는 생선 뼈를 잘 씹어 먹는다. 잔가시는 안 먹지만 등뼈와 머리뼈는 잘 먹는다. 가자미 뼈는 별로 안 좋아하고 고등어 뼈는 아주 좋아한다. 매일 사료만 먹으니 고등어 뼈도 별미인가 보다. 사료가 있어도 고등어 뼈를 먼저 먹는다. 뼈에 붙어 있는 고기도 맛있겠지만 그 간간한 맛도 좋아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소금 말이다. 짐승들은 소금을 따로 먹지 않아도 잘 산다고는 하는데 한 번 맛을 보면 ‘바로, 이 맛이야!’ 할지도 모른다. 실제로 만주 북쪽에서 순록을 방목하는 사람들에게는 순록이 도망가지 않게 하는 비법이 있다. 그들이 순록을 놓아기르지만, 순록은 도망가지 않는다. 영상에서 보니 그들이, 내 기억에, 이삼일에 한 번씩은 순록을 불러서 소금을 먹인다. 그 순록들은 소금을 받아먹기 위해서 도망가지 않는 것이다.
여름에는 햇볕을 피할 곳이, 겨울에는 햇볕을 쬘 곳이 필요하다
어느 여름에 보니 개들이 헉헉대고 있다. 여름에는 해가 일찍 뜨고 금방 높아진다. 이 개 우리에는 하절기 오전에 햇볕이 곧장 내리쬔다. 개들이 햇볕을 피할 곳이라고는 집안뿐인데 거기는 바람이 잘 통하지 않아서 덥다. 여름 오전에 개들이 햇볕과 더위를 피할 곳이 없어서 괴로워하고 있었다.
주위를 둘러보니 큼직한 합판이 있어서 지붕처럼 우리에 올려 두기도 하다가 좀 지나서 우리 옆에 세워 두었다. 오전 동안에는 개 한 마리가 엎드려 있을 수 있는 작은 그늘이 만들어진다. 오후가 되면 개집 앞에 다른 그늘이 생기니까 거기를 이용하면 된다.
개도 여름에는 햇볕을 피하려고 애쓰고, 겨울에는 햇볕을 쬐려고 애쓴다. 제일 좋은 방법은 햇볕에 관해서 개가 스스로 선택할 수 있게 해 주는 것이다. 사람도 햇볕을 쬐어야 몸에 비타민D, 세로토닌 등이 생긴다고 하던데 개도 마찬가지일 거라고 나는 추측하고 있다.
주변을 둘러보면 이런 사정을 잘 이해하는 개 주인들도 많은데 그렇지 않은 분들도 있는 것 같다. 개는 손이 많이 가고 신경을 많이 써주어야 하는 동물이다.
바쁘거나 관찰력 없는 분들은 개를 안 키웠으면 한다
TV에 개가 많이 나온다. 개 키우는 사람이 많아서 그럴 수도 있고, TV에 개가 많이 나오니까 새롭게 키우려는 사람도 계속 생기는 것 같다. 아이를 잘 안 낳는 세태와 맞물리면서 더 그런 것 같다. 나는 방 안에서 개를 키워 본 적은 없지만 시골에서 자라면서 집에 있는 개를 늘 보면서 커서 그런지 개한테 열광하지도 않고 싫어하지도 않고 그냥 무덤덤한 편이다. 그런데 개든 뭐든 생명 있는 것을 키워 주기로 했으면 잘 키워 주어야 한다. 바쁜 분들은 자기 마음과는 달리 개한테 신경을 못 써 주게 될 것이다. 그럼, 말 못 하는 짐승을 고생만 시키고 자기도 죄를 짓게 되는 것이다. 관찰력이 부족하거나 부주의한 분들도 그렇게 되기 십상이다.
시골 마당에서 키우는 개들은 아파도 병원에 안 데려가는 게 보통이다. 물론, 어떻게든 살펴 주려고는 하는데 병원까지는 안 데려간다. 그와 달리 집안에서 가족처럼 키우는 개가 아프면 병원에 안 데려갈 수 있을까? 동물병원은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으므로 치료비가 상당히 비싸다고 한다. 개 미용실 비용도 사람 미용실보다 더 비싸다고 한다. 평소에 사룟값도 들고 이래저래 돈이 많이 든다.
그래도 꼭 개를 키우고 싶으면 미리 공부도 많이 하고 견종도 잘 골랐으면 한다. 어느 초보 견주가 귀여운 생김새만 보고 덜컥 개를 골랐다. 옆에서 보니까 귀여운 생김새와 달리 성깔이 있다. 사람만 보면 짖는다. 초보 견주가 그런 개를 키우면 사람도 개도 다 고생길이다. 이 집에 있는 시바견은 털갈이 때 털이 많이 빠진다. 어떤 개든, 사료뿐만 아니라 물도 잘 챙겨줘야 한다. 고등어 뼈를 잘 받아먹는 개를 보면서, 개가 편식으로 영양소가 부족하지는 않은지 잘 살펴야 한다고 생각한다. 개가 더운지 추운지 살펴야 한다. 개를 잘 키워 주면 덕을 베푸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공부하고 연구해야 한다.
이웃집 개하고도 소통할 수 있다
꼭 내가 개를 키우지 않아도 다른 개나 다른 동물과도 소통할 수 있다. 내가 산책하러 나가면 다른 집 개가 나를 보고 짖곤 했다.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산책하러 나갈 때마다 저 개가 나를 보고 짖으면 좀 귀찮겠다.’
그래서 친해지기로 했다. 나는 개가 나를 보고 짖거나 말거나 아주 반가운 얼굴로 개에게 손짓을 보냈다. 다음에 볼 때도 그렇게 했다. 다음에도, 다음에도 계속 그렇게 했다. 어느 순간부터 개가 나를 보고도 안 짖게 된다. 아는 사람한테 굳이 짖을 필요가 없지 않나.
몇몇 개를 접해 보면서 이런 결론이 나왔다.
영리한 개일수록 빨리 알아본다.
영리한 개는 서너 번 만에 벌써 안 짖게 된다. 내 산책길에 보는 한 개는 곁눈질로 나를 쓱 보고 저리 고개를 휙 돌려 버린다. 그 옆에 있는 개는 아직도 실수로 몇 번 짖곤 한다. 몇 번 짖다가 내가 손짓을 보내면 아는 사람인 걸 그제야 깨닫고 그만 짖는다. 내 눈에는 고개를 바로 휙 돌리는 그 개가 영리해 보여서 탐나 하곤 한다. 이처럼 내 개가 아니어도 얼마든지 소통할 수 있다. 주변에 고양이도 많이 돌아다니는데 그들과도 소통하곤 한다. 고양이한테 생선 뼈를 줄 때도 있다. 어떤 고양이는 널브러져서 애교를 부리더라. 그렇게 붙임성이 좋을 수가 있나!
야생동물과도 소통을 시도하고 있다
야생동물들과는 소통이라기보다는 짝사랑인 것 같다. 얼마 전에는 진박새 부부와 짧게 만났다. 너무 짧게 만나서 아주 아쉬웠다. 내년에 또 봤으면 한다. 나를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자기들 할 일만 열심히 하던 처마 밑의 두 왕바다리 여왕벌은 결국 집이 추락해서 번식에 실패하고 말았다. 그 자리는 잘 붙여야 하는 자리란 말이야! 전에도 거기서 실패하는 벌들을 봤었다. 새똥이 남은 걸 보면 그중 하나는 이번에도 직박구리한테 당한 것 같기도 하다. 전에 직박구리 한 마리가 다른 처마 밑에 왔다 가길래 살펴보니 거기서 살던 거미가 사라졌더라. 그래서 이번에도 직박구리를 의심하고 있다. 겨울에는 홍시 껍질을 잘 해치워 줘서 고마운 직박구리가 말이야. 이제 다른 곤충 친구들은 어찌 될 건가, 잘 살펴보아야겠다.
적다 보니 내가 이렇게 많은 동물하고 소통하고 있었는지 몰랐다. 아직도 적을 게 한참 더 남았는데 더 적으면 욕먹을 것 같다. 그래도 마지막으로 한마디만 더 하겠다. 못 믿을 사람 많을 거다. 사실, 나는 식물들과도 소통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