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하공진 처지였으면

고려거란전쟁을 보고, 내가 거란 황제의 회유를 받는 처지의 하공진이었으면 어떻게 했을지 상상력을 펼쳐본다.

드라마에서는 산 채로 하공진의 간을 꺼냈다는 식으로 묘사하던데 극적인 각색인 듯하다. 각색이었기를… 너무 끔찍해서… 그러나 거란 황제를 모욕해서 살해됐다는 말은 백과사전에도 나오니 사실이었나 보다.

거란왕은 온갖 악형과 회유로 신하가 될 것을 요청하였으나 이를 완강히 거절하였을 뿐만 아니라, 나중에는 심한 모욕적인 말로 응대하여 거란왕을 크게 격분시킴으로써 살해된 뒤 간마저 꺼내져 씹히기까지 하였다. 상서공부시랑(尙書工部侍郎)에 추증되었다.
[네이버 지식백과] 하공진 [河拱振]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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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공진 장군은 강직한 성품이었나 보다. 자기 신하가 되라는 거란 황제 야율융서의 요청을 거부했을 뿐만 아니라 그를 모욕하기까지 하여서 죽임을 당하였다. 그래도 일국의 황제인데 모욕할 필요는 없었는데… 참아야 했는데… 가슴이 너무 뜨거워서 어쩔 수 없었나 보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었다. 하공진 장군은 진정한 충신이고 애국자이다.

만약에 내가 그 상황이었으면 어떻게 했을까? 살다 보면 우리도 그 비슷한 상황에 부닥칠 수 있다. 그런 상황을 가정하고 미리 생각해 둔다면 나쁠 리가 없다.

그 상황이라는 게 내가 지금 책상머리에서 생각하는 것처럼 여유가 있는 상황은 아니었다. 언제 죽을지도 모르는 엄혹한 처지였다. 또 나는 그 일의 전후 사정과 결과를 아는 처지에서 내 생각을 적고 있으니 여러모로 하공진 장군보다는 유리한 상황에서 내 상상력을 펼치는 중이라는 걸 참작해야 한다.

이래 죽으나 저래 죽으나 똑같으니, 살려고 노력은 해 봐야지. 나였다면 거란 황제의 마음을 움직이기 위해 노력했을 것이다.

“폐하, 폐하께서 소인을 좋게 봐주시는 것에는 소인도 감읍하옵니다. 실은 소인이 그렇게 대단한 인물은 못 되옵니다. 그런 소인을 폐하께서 그리 봐주시니 고맙사옵니다. 소인이 이곳에 온 뒤로 살펴보니 폐하께옵서는 소인의 주군이 되기에 부족함이 없는 분이옵니다. 고금의 여러 임금과 비교해 보아도 폐하는 뛰어난 임금 축에 속하옵니다. 그리하여 소인도 폐하를 소인의 주군으로 모시고 싶은 마음이 없지는 않사옵니다.”

“하지만, 폐하!
일을 추진할 때는 그만한 모양새를 갖춰야 하옵니다. 소인이 폐하의 신하가 되는 데에는 한 가지 걸림돌이 있사옵니다. 그것은 바로 소인이 자발적으로 이곳 거란 땅에 오지 않았다는 것이옵니다. 이런 사정을 굽어살피소서!”

“지금 폐하께옵서 성은을 베푸시어 지난번 소인이 폐하를 속인 일을 용서하시고 소인을 고향 고려로 돌려보내 주신다면 훗날 소인이 제 발로 이곳으로 폐하를 다시 찾아뵙게 될 때, 그때는 진심으로 폐하의 신하가 되어 폐하께옵서 대업을 이루시는 데 소인의 미력한 힘이나마 보탤 것이옵니다. 통촉하소서!”

거란 황제는 나를 살려 보내주면 내가 자기들에게 칼을 겨눌지도 모른다고 생각할 가능성이 크다. 그러니 나도 하공진 장군처럼 살해당하기 십상이었겠다. 한편으로 생각해 보면, 당시의 거란 황제 야율융서는 거란의 전성기를 이끈 임금이니 꽉 막힌 인물은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내가 살아 돌아올 가능성이 전혀 없지는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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