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마 밑에 사는 말벌 2종을 지난 4년여간 관찰하고 겪어 보니 말벌은 무서운 존재가 아니었다. 말벌에 쏘이지 않는 요령을 설명한다. 요령을 알고 조금만 조심하면 말벌에 쏘이지 않는다. 말벌을 죽이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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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운 날씨에 말벌 개체수가 늘어났다.
무지막지한 장마가 끝나고 나니 이번에는 찜통더위가 기승이다. 지난 몇 년에 비해서 확실히 더 덥다고 느끼고 있는데 언론 보도에 의하며 수십 년 만에 제일 더운 날씨라고 한다. 그런데 예전에 비해서 말벌 숫자도 늘어났다. 마침 뉴스에서 전문가가 그 이유를 설명하는데 말벌이 더위를 좋아해서 그렇단다. 말벌에 쏘여서 돌아가신 분들도 있다고 하니 안타깝다. 침에 독이 있으므로 조금 더 조심할 필요는 있다. 그런데 알고 보면 말벌은 그리 위험하지도 무섭지도 않다. 옆에서 말벌을 여러 해 겪어보니 말벌의 습성을 알만하다. 우리 생태계에 필요한 존재이기도 한 말벌을 굳이 소방서에 연락해서 죽여 없앨 필요까지는 없다고 본다.
내가 경험한 말벌 (1/2) – 왕바다리
말벌은 종류가 많다. 우리나라에만 수십 종이 있다고 한다. 그중 어떤 종은 사람 집에 와서 번식하기도 한다. 내가 우리 집의 처마 밑에서 두 종류의 말벌이 서식하는 모습을 매년 본다. 그중 한 종은 왕바다리라고 알고 있고 나머지 한 종은 왕바다리보다 절반쯤 되는 작은 말벌인데 종명은 아직 모르겠다. 그 둘의 서식 방법은 완전히 다르다. 왕바다리는 주로 처마 밑에 조금 완만한 원뿔 모양으로 집을 매달아 짓는다. 처음에는 여왕벌 혼자서 집도 짓고 새끼도 친다. 나중에 군집이 성장하면 집이 점점 옆으로 늘어나서 넓적한 접시 모양이 된다.
일벌이 태어나고 나면 군집이 빨리 성장하게 된다. 그들이 열심히 사는 모습을 보면 그들의 목표가 무엇인지 쉽게 알 수 있다. 바로 종족 보존이다. 왕바다리 여왕벌은 일벌들의 도움을 받아서 가을쯤에는 신 여왕벌들을 생산해 낸다. 신 여왕벌들은 겨울잠을 자고 이듬해 봄에 다시 깨어나 자신만의 왕국을 건설하기 시작한다. 봄에 여왕벌은 혼자서 쓸쓸하게 둥지를 짓는데 이로 미루어 볼 때 지난가을까지 그들을 키워주었던 일벌들은 그해에 생을 마감한 것으로 보인다. 즉, 왕바다리 일벌은 봄에 태어나서 가을에 죽으므로 한 반년쯤 사는 셈이다. 반면에 여왕벌은 가을에 태어나서 이듬해 가을까지 산다고 보면 일 년을 사는 셈이다. 왕바다리 여왕벌이 일 년을 넘겨 사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이 종들은 주로 건물이나 구조물의 처마 등에 집을 지으며, 우리나라에서 가장 흔하게 관찰되며 전국적으로 분포하는 종이다. 둥지에 가까이 접근하거나 직접적으로 건드리지 않을 경우 강한 공격성을 나타내지 않는다.
* 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왕바다리 (국립공원공단 생물종 정보 : 동물)
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5916165&cid=46691&categoryId=46691
국립공원공단 생물종 정보에 내가 관찰하고 경험한 것과 똑같은 설명이 나와 있어서 여간 반갑지 않다! 보는 눈은 다들 비슷한 모양이다. 왕바다리가 늘 내 옆을 지나다니지만, 나는 그들에게 한 번도 쏘이지 않았다. 나는 그들을 위협하거나 그들이 의심할 만한 행동을 하지 않으므로 그들도 나를 별로 경계하지 않는다. 사진을 찍기 위해 몇 초 정도 아주 가까이, 한 20cm까지 접근해도 별문제가 되지는 않는다. 물론, 사진을 찍었으면 바로 떠난다.
내가 경험한 말벌 (2/2) – 벽틈에 사는 작은 말벌
벽 틈에 서식하는 다른 말벌도 있다. 이들은 왕바다리 절반 정도의 크기이고, 왕바다리처럼 겉으로 드러나게 집을 짓지 않고 벽에 있는 틈새를 이용한다. 아마 그 안에 집을 짓는 것 같다. 2022년 가을에 벽틈에 들어가서 보이지 않던 이 말벌들이 올해 다시 나와서 활동한다. 겨울잠 자러 안에 들어간 게 맞는지 궁금했는데 맞았다. 그들은 군집 전체가 월동하는 것 같다. 나는 이 말벌에 한 번 쏘였던 적이 있다. 딴생각하느라고 미처 조심하지 못했을 때 이 말벌 한 마리가 내 콧등에 앉았다가 날아갔는데 번쩍하는 화끈함이 느껴졌다. 그러나 그것뿐이었다. 붓지도 않고 더 이상 아프지도 않았다.
사람들이 말벌을 무서워하는 이유는?
자기 집에서 말벌 집을 발견하면 119에 신고하는 사람이 많은가 보다. 그러려고 소방서를 만들어서 국민 세금으로 유지한다고 생각하면 당연한 행동이겠다. 그런데 사람들이 왜 이렇게 말벌을 무서워할까? 내가 보기에 잘 몰라서 그런 것 같다. 모르는 것만큼 무서운 게 없다. 이렇게 된 데에는 언론의 역할이 컸다고 생각한다. 요즘 언론에 보도되는 말벌을 보면 아주 몹쓸 것들이다. 사람을 죽게 했다 하니 이보다 더 몹쓸 물건이 어디 있겠나?
그러나 언론에 보도되는 게 전부일까? 뉴스에는 자극적인 것들이 나오기 마련이다. 아주 불행한 일, 아주 좋은 일 등 극단적인 것이 주로 나온다. 평범한 일은 잘 안 나온다. 가령, 전국에서 우리 국민 수십만 명이 말벌하고 사이좋게 한 지붕 아래에서 서로 잘 지내고 있다고 해도 그런 건 뉴스에 안 나온다. 예를 들면 이런 분 말이다:
http://ecotopia.hani.co.kr/?document_srl=26698
그러나 말벌에 쏘여서 몇 명 죽었다고 하면 그건 뉴스에 크게 나온다. 그러니 나머지 사람들은 언론을 통해서 말벌의 안 좋은 점만 접하는 셈이다. 말벌이 안 무서울래야 안 무서울 수가 없다. 요즘은 뉴스도 서로 경쟁이 더 치열하다. 먹고 살려고 그러겠지 하고 이해는 된다. 평범한 것만 보도해서는 무료해서 사람들이 잘 안 봐 준다. 뉴스가 잘 팔리지 못하면 방송사가 유지되지 못한다. 덥고 짜증스러운 요즘 날씨에 말벌은 아주 좋은 뉴스거리이다. 뉴스에서 말벌의 부정적인 면만 강조한 결과, 이제는 말벌이 거의 뱀과 동급이 됐다. 그렇다 보니 말벌을 봐도 그냥 멀뚱멀뚱 그러려니 하는 나 같은 사람은 별종 취급받게 생겼다.
말벌에 쏘이지 않는 요령.
말벌이 옆에 있어도 내가 쏘이지 않음을 안다면 더 이상 말벌은 무서운 존재가 아니다. 말벌에 쏘이지 않는 간단한 요령을 알아보자. 사람 집에서 서식하는 말벌을 기준으로 설명한다. 말벌은 이유 없이 사람을 공격하지 않는다. 말벌에 쏘이지 않으려면 내가 자기들을 해코지할 거라는 오해를 사지 말아야 한다. 다음과 같은 점에 유의한다.
- 말벌 집에 너무 가까이 가지 않는다.
- 말벌 집에 가까이 갔다면 너무 오래 머무르지 않는다.
- 말벌 집 곁에 있는데 낌새가 이상하다 싶으면 바로 그 자리를 벗어난다.
- 실수로 말벌이나 말벌 집을 건드리지 않도록 한다.
- 지나친 공포감을 갖지 않는다.
말벌은 힘없고 약한 생명일 뿐이다. 사람이 말벌을 무서워할 필요가 없다. 처지를 바꿔서 생각해 보면 더 실감이 나겠다. 말벌은 사람을 안 무서워할까? 내가 겪어본 이 말벌들은 비 맞을 걱정 없이 편하게 번식할 곳을 찾아서 사람 집에 왔을 것이다. 사실 모든 동물은 사람을 경계한다. 말벌도 어쩔 수 없어서 사람 집에 왔지만, 당연히 사람을 경계한다고 볼 수 있다. 이런 상황을 헤아리지 못하고 부주의하게 행동하는 사람은 말벌에게 공격받을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설사 말벌에게 공격 좀 받을 것 같다고 너무 걱정할 필요도 없다. 말벌에 비하면 사람은 엄청나게 강력한 존재이다. 1:1 로 싸우면 당연히 사람이 이긴다. 그럼, 사람 한 명에 말벌 스무 마리가 덤비면? 말벌이 떼로 덤빈다는 건 아마도 집을 건드렸기 때문일 텐데, 그런 실수를 안 하는 게 상책이겠다. 야외에 나갔을 때는 특히 조심해야 한다. 말벌 중에서 제일 강하다는 장수말벌 설명에 이런 말이 나온다.
집을 짓는 장소는 땅속에 어느 정도 공간이 있는 곳을 택하며 종종 무덤, 나무뿌리 및 구덩이 속 등 폐쇄적 공간만을 이용한다.
* 출처: 국립공원공단 생물종정보 : 동물 – 장수말벌
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5916169&cid=46691&categoryId=46691
만약 실수로 장수말벌 집을 건드렸으면 삼십육계 줄행랑도 방법일 것이다. 장수말벌이 다른 종보다 비행 속도가 느리다고 한다. 아무튼 말벌한테 의심받을 행동 하면 안 되고, 실수로 이런 말벌 집을 건드리지도 말아야겠다.
말벌도 우리 생태계에 필요한 존재이다.
나는 분위기에 휩쓸려 다니기 좋아하지 않는 편인데다 말벌을 직접 겪어보아서 말벌이 무섭지도 않고 미워할 필요도 없음을 안다. 물론 내가 말벌을 겪어본 경험이 한정되어 있어서 모든 말벌이 그렇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그러나 그들이 미물이고 사람한테 좀 피해를 주었다고 무조건 죽여 없애는 건 옳지 않다. 그들 모두는 각자 우리 생태계에서 맡은 역할이 있어서 어느 종이 갑자기 사라져 버리면 그전에는 몰랐던 문제가 생길 수 있다.
중국에서 참새가 곡식을 많이 먹어 치운다고 참새를 없앴더니 어떻게 되었나? 곡식 소출이 늘었는가? 그 반대였다. 참새를 없앤 후에 오히려 곡식 소출이 줄어서 그 이유를 찾아보았단다. 알고 보니 참새가 평소에 해충을 많이 잡아먹어서 곡식 농사에 도움을 주었는데 참새가 없어지자, 해충이 들끓어서 곡식 농사가 망한 것이었다. 그래서 뒤늦게 후회하여 동북 지방의 참새를 다시 중국 전역으로 퍼뜨렸단다. 나는 이와 같은 이야기가 말벌에도 적용될 수 있다고 본다. 실제로 말벌은 사람이 해충이라고 여기는 것들을 많이 잡아먹는다고 한다:
말벌은 잡식성으로 다른 벌뿐 아니라 우리를 귀찮게 하는 파리, 모기나 농작물에 해를 끼치는 꽃매미를 비롯한 외래해충 등 거의 모든 곤충을 잡아먹으며 밀도를 조절해준다. 사체를 분해하는 청소동물 노릇도 하며 꿀벌처럼 꽃에서 꿀을 섭취하며 꽃가루받이도 해 준다.
* 출처:
https://www.hani.co.kr/arti/animalpeople/wild_animal/968876.html
죽이는 것이 능사는 아니다.
말벌을 잡아 죽이기 전에 그들과 공존할 방법을 연구해 봄 직하다. 죽이는 것이 능사는 아니다. 불교에서는 살생을 죄짓는 것으로 본다. 내가 불교 신자는 아니지만 석가모니 말씀은 흘려듣지 않는다. 인류 역사상 석가모니보다 윗길인 사람이 몇이나 되겠나? 그런 분 말씀을 무시하면 안 된다. 누군가를 죽일 수도 있고 살릴 수도 있는 순간에 살리는 선택을 한다면 훗날의 자기 자신에게 도움을 준 셈이다.
죽이는 것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사람이 너무 많다. 성인이 왔다 가신 지 너무 오래되어서 그런가 보다. 성인 중에 죽이는 것을 장려한 분은 없다고 생각한다. 석가모니는 명시적으로 살생을 금지하였다 (그런데 육식을 금하지는 않았다!). 공자와 예수는 인, 사랑이라는 말로 암시적으로 불살생을 표현했다고 볼 수 있다. 성인들도 성격이 다 다르고, 처해있는 시대적, 지역적 상황도 다르므로 가르침의 강조점이 다르다. 나는 살생에 관해서 석가모니가 취한 명시적인 태도가 제일 마음에 든다. 석가모니는 당신의 전생도 대놓고 드러낸 분이다. 현생의 이런저런 문제를 설명할 때 그 원인을 전생에서 찾아서 설명하는 논법을 많이 사용했으므로, 당신의 전생과 다른 이들의 전생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나온 것이다. 전생이 있으면 내생도 있다고 봐야 한다. 생명을 많이 죽인 사람이 내생에 좋은 곳에서 태어날 수 있을까? 내생까지 가기 전에 당장 이번 생부터 고달파질 수도 있다. 그래서 나는 사냥과 낚시를 취미로 삼는 것도 좋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보면, 말벌에 관해서 잘 몰라서 지레 겁먹고 보이는 족족 말벌을 죽여버리거나 소방관 불러서 죽이게 만드는 사람은 자기 자신한테 몹쓸 짓 하는 셈이다. 그런 거 다 거짓말이고 헛소리라고 할 사람도 있을 테지. 어차피 과학적으로 증명할 수도 없으니 논쟁할 필요도 없고, 내 말을 믿으라고 강요하지도 않는다. 그저 나는 석가모니 같은 성인이 거짓말을 했을 리 없다고 생각한다. 경전 중의 어떤 내용은 후세의 사람이 첨가했을 수도 있지만 다 지어낸 것은 아닐 것이다. 다른 성인들의 가르침에도 암시적으로 또는 비유적으로 이런 가르침이 느껴지는 부분이 있다. 각자 자신이 받드는 인생 스승의 가르침을 곱씹어 보면, 우리가 힘없는 생명을 다 죽여버리는 게 좋은지, 살려주는 게 좋은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인간이 만물의 영장이라고 살생 면허까지 가지고 있지는 않다. 피할 수 있는 살생은 피해야겠다.
좋은 글입니다. 저는 매일 우연히 발견하는 블로그에서 새롭고 도전적인 것을 배웁니다. 다른 작가의 콘텐츠를 읽고 다른 사이트의 무언가를 사용하는 것은 항상 유용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