옹벽 구멍에서 낯선 새 한 쌍이 둥지를 틀고 있는 모습을 보고 그 새들이 진박새임을 알아내는 과정을 적은 기록을 되돌아보면서 나의 감상을 적었다. 동정, 박새, 쇠박새, 진박새, 곤줄박이, 뻐꾸기, 탁란, 오쟁이 진 남자, cuckold, 되지빠귀, 솔부엉이, 꾀꼬리, 파랑새, 오리류, 원앙, 육추, 새 울음소리에 관하여 언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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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박새를 동정하다
나는 새를 좋아한다. 집 가까이에서 새가 번식하는 모습을 보는 것은 얼마나 행운인가? 그동안 여기 살면서 매년 봄이면 내 차에 떨어지는 커피색 물질을 보며 새들이 가까이에서 번식한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올해는 이렇게 가까이에서 진박새 부부가 번식하는 모습을 볼 수 있게 되어서 기분이 좋다.
처음부터 저 새들이 진박새인 것을 알지는 못했다. 이 주변에 여러 가지 새들이 지나다니는데 생각보다 박새류 새들이 많이 보이지는 않는다. 내가 잘 알아보는 새는 박새, 쇠박새이고 진박새와 곤줄박이는 손에 꼽을 정도밖에 못 보았다. 하긴 내 어수룩한 눈썰미로 얼핏 보고 박새와 진박새를 구별하기는 쉽지 않다. 평소에 박새라고 생각했던 새 중에는 진박새도 있었을 것이다. 저 새들이 진박새인 것을 알기까지 여러 날이 걸렸는데 다행히 그 과정을 어딘가에 기록해 두었다. 다시 읽어 보니 웃기기도 하고 어처구니가 없기도 하다. 이 글을 읽는 여러분은 내 머릿속에서 일어난 여러 추측과 변덕스러운 일을 알게 될 것이다. 사실 이 일뿐만 아니라 여러 가지 다른 일에서도 이런 비슷한 과정이 내 머릿속에서 일어나곤 한다.
2023.04.25.
박새가 집을 지으려나 보다. 전에 부부가 왔다가 한참을 안 오더니 오늘 한 녀석이 또 나타났다. 같은 새인지는 모르겠다. 모른 척해야겠다.
나는 저 옹벽에 틈이 있는지도 모르고 있었다. 새들이 거기를 귀신같이 찾아냈다. 이때만 해도 그 새들이 어련히 박새겠거니 했다. 그렇다. 이 새들은 아마 그날보다 한 달 전쯤에 같이 와서 살펴보고 갔었다. 그 새들이 미리 살펴보고 갔다가 번식 철이 되자 돌아왔다고 보는 것이 상식에 부합한다. 진박새 특유의 그 꺼칠한 느낌….
2023.04.26.
박새인지 뭔지 오늘도 왔다. 귀엽다. 자리 잡기로 했나 보다. 박새 종류가 구멍을 좋아하긴 하지. 박새, 쇠박새, 진박새, 곤줄박이 중 하나일 것이다. 너무 자세히 보면 도망갈까 봐 자세히는 못 봤다. 나중에 새끼 쳐서 빼도 박도 못하게 되면 멀리서 몰래 사진이나 찍어 보련다.
노련하게 박새에서 한 발 빼려는 모습이 보인다. 저 때 뭔가 박새가 아닌 것 같은 느낌을 받았나 보다. 하하.
2023.04.28.
새가 오늘은 안 왔다. 구멍 안에 공간이 없는가 보다. 공간이 있어야 집 짓는 데 쓰지.
새가 안 오니 내 마음도 약해졌나 보다. 옹벽에 틈이 있다고 안에 공간이 있다는 보장은 없다. ‘여긴 아기 키울 곳이 아닌가 보네’ 하면서 다른 데로 가버렸을 수도 있다.
2023.04.29. 오전
옹벽에서 새가 뿅. 어제 새가 안 보이길래 번식할 만한 곳은 아닌가 보다 했는데 거기서 방금 새가 뿅 하고 튀어나와 방향을 바꾸어 산으로 날아갔다. 좋은 구경거리가 생겼다.
다시 새가 보이니까 기분이 좋아졌다. 저 때 새가 옹벽 구멍에서 뿅 하고 튀어나와서 공중에서 바로 방향을 바꾸어 산으로 날아가는 모습은 정말 놀랍고 멋있었다.
2023.04.29. 오후
새가 넥타이를 안 맸다. 마트 갔다 오면서 보니 새가 자기 집 앞에 나와서 서 있다. 그래서 차 안에서 가만히 새를 봤는데 넥타이가 없었다. 그럼, 박새는 아니다.
넥타이는 박새의 배에 세로로 길게 난 어두운 털을 내가 일컫는 말이다. 우리나라에 사는 박새류 넷 중에 길쭉한 넥타이를 맨 새는 박새뿐이어서 내가 박새인지 알아볼 때 찾는 것이다. 그럼, 이제 박새가 아니라는 결론이 나왔다.
2023.04.30.
옹벽 손님은 쇠박새, 진박새 중 하나일 것 같다. 박새, 곤줄박이는 아니다.
그렇지. 점점 정답에 근접해 가는데…
2023.05.01. 10:53
박새 같기도 하다. 방금 옹벽 새 부부가 같이 귀가했는데 박새 느낌이다. 아직 넥타이를 확인하지는 못했다. 박새 종류 중 넥타이 맨 새는 박새뿐이다.
이건 무슨… 넥타이 안 맨 걸 벌써 봤으면서 또 마음이 흔들리나? 이렇게 줏대가 없어서야 어디다 쓸 거냐?
2023.05.01. 11:51
박새 아닌가 보다. 한 마리가 나와서 두리번두리번하는데 박새도 아니고 처음 보는 새다. 언젠가는 네가 누군지 알게 될 거야.
새한테 안 들키고 봐야 하니까 자세히 보기는 힘들다. 얼핏 보고 판단해야 한다. 그래서 이랬다저랬다 한다. 나는 진박새를 실제로 본 적이 몇 번 없었다.
2023.05.02.
진박새로 동정하였다. 옹벽 구멍을 차지한 새의 정체를 알아냈다. 정면에서 보니 진박새였다. 목 밑에 큼직한 삼각형이 있더라.
이날, 다른 일로 그 근처에 갔다가 운 좋게 정면에서 그 새를 보았다. 목 밑에 삼각형이 있었고 배는 그냥 하얬다. 진박새 사진을 검색해 보니까 바로 그 새였다. 수수께끼를 드디어 풀었다. 구멍 입구가 좁아 보여서 진박새 말고 다른 새들은 쓰고 싶어도 못 쓰겠더라. 그런 곳을 용케 잘 찾아 들어갔다.
동정
동정이란 그게 어떤 종인지 알아냈을 때 전문가들이 쓰는 말이다. 주워듣고 나도 써본 것이다. 한 건 했다고 아는 채 한 것이다. 하하.
진박새, 쇠박새, 곤줄박이, 박새
http://www.kookje.co.kr/mobile/view.asp?gbn=v&code=0800&key=20100203.22026204837
https://kminito.tistory.com/59
그렇다. 진박새의 턱 밑에는 큼직한 삼각형이 있다. 넥타이는 없다. 쇠박새는 조그만 나비넥타이를 매고 있다. 진박새와 쇠박새는 박새류 중에서 제일 작은 새로, 덩치가 서로 비슷한데 눈으로 느껴지는 느낌은 사뭇 다르다. 예전에 박찬호 부인이 간장형 남자, 된장형 남자를 언급하였는데 그런 식으로 말하면 쇠박새는 간장형이고 진박새는 된장형이다. 쇠박새는 귀엽고 깔끔한 인상이고 진박새는 꺼칠한 느낌을 풍긴다.
곤줄박이는 알록달록 예쁜 새이다. 불그레한 색 때문에 얼핏 보면 딱새 수컷과 비슷한 느낌이다. 겁 없이 사람들 손바닥의 먹이를 잘 받아먹더라. 덩치는 제일 크다. 박새는 경계를 더 많이 한다.
뻐꾸기, 탁란, 오쟁이 진 남자, cuckold
이 박새류의 새들은 구멍에서 번식하기에 뻐꾸기한테 탁란을 당하지 않는다. 탁란 당하는 새들을 보면 불쌍해서 못 봐준다. 탁란이란, 다른 새의 둥지에 알을 낳아서, 부화시키고 새끼 키우는 것을 둥지 주인에게 다 떠넘기는 것이다. 탁란 당하는 새로는 뱁새(붉은머리오목눈이), 개개비, 딱새 등이 있다. 오죽하면 ‘오쟁이 진 남자’를 뜻하는 영어의 cuckold 가 뻐꾸기(cuckoo)에서 나왔다. 뻐꾸기가 왜 이런 기형적인 번식 방법을 갖게 되었는지 연구자들이 알아보니까 멀리 아프리카에서 와서 짧은 기간 번식하고 다시 아프리카로 가야 해서 그렇단다. 자기가 직접 새끼를 키우려면 시간이 오래 걸린다는 말이다. 여기도 이제 곧 뻐꾸기 소리가 들릴 것이다. 그 정다운 울음소리 뒤에 그렇게 무서운 진실이 숨어 있었다. 탁란 당하는 새의 알과 새끼는 뻐꾸기 새끼한테 다 밀려나서 죽게 된다.
되지빠귀, 솔부엉이, 꿩, 꾀꼬리, 파랑새 울음소리
하절기가 되니까 주변에 온갖 새가 넘쳐난다. 여름 철새들이 돌아와서 더 그렇다. 벌써 지난 4월부터 낮에는 뽀삑 뽀삑 뽀로로롱 뽀롱뽀롱, 되지빠귀의 낭랑한 울음소리가, 밤에는 옥옥, 옥옥, 솔부엉이 소리가 나의 귀를 즐겁게 해준다. 철새는 아니지만 오늘 아침에는 꿔엉 꿔엉 하는 꿩 소리가 여러 번 들린다. 이제 곧 꾀꼬리와 파랑새도 오겠지. 이들도 특이한 소리를 낸다. 꾀꼬리의 노랫소리는 덩치에 비해 성량은 작지만 무척 감미롭다. 그런데 가끔 이상한, 고양이 소리 같은 소리도 낸다. 먀-앙 먀-앙. 기분이 안 좋을 때 그러는 것 같다. 파랑새는 공중에서 곤충 사냥을 하며 매미 소리 같은 코맹맹이 소리를 낸다. 꽥꽥 꽥꽥. 오리 소리하고는 느낌이 사뭇 다르다. 나는 꾀꼬리와 파랑새의 그 화려한 색깔을 참 좋아한다.
새들의 육추 (새끼 키우기)
새들은 대개 부부가 같이 새끼를 키우는데 그래서 더 보기가 좋다. 포유류와 다른 점이다. 포유류 암컷들은 혼자 새끼 키우느라고 고생을 많이 한다. 사람 남자들은 그래도 육아를 좀 도와주는 축인 것 같다. 새 중에서는 오리류가 포유류처럼 새끼를 암컷 혼자 키운다고 한다. 그중 원앙은 특이하게 나무 구멍에서 알을 부화시킨다. 어미 원앙은 새끼들이 나오면 새끼들을 데리고 바로 둥지를 떠나 물로 간다. 나무에 쇠딱따구리 같은 새들이 구멍을 뚫어 놓으면 처음에는 작은 새들이 쓰다가 나중에 구멍 입구가 점점 넓어지면서 더 큰 새들이 쓰게 된단다. 원앙이 쓰려면 까막딱따구리 같은 큰 새가 뚫어놓은 구멍이 필요하다.
진박새 부부가 번식에 성공하기를 바란다. 다른 사람들한테 들키지 않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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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이후 찍어놓은 영상입니다. 여러 개 중 하나입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eT5Mp2bEx1I